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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9:41 본다하니 못 보는 맹인노릇

truth 2022. 2. 1. 17:21

John 9:41 본다하니 못 보는 맹인노릇


New Living Translation
 If you were blind, you wouldn’t be guilty,” Jesus replied. 
But you remain guilty because you claim () you can see.

 

* 가정법 동사로 쓰인 were ; 과거사실이 아니고 실제가 아닌 가정적인 조건상 쓰임

* 가정법 조동사 would ; 조건절+were, 주절+would+현재동사 구조로 실제일이 아닌 가정/상상을 표현함

* 불완전 자동사 remain ; 보어를 필요로 하고 형영사나 명사로 주어의 상태를 설명함

* 목적인 that절/명사절 (that) you can see. 명사절/종속절 접속사로 쓰인 that은 종종 생략됨

  접속사인 관계사는 대명사 역할도 하지만 명사절 접속사는 단지 접속사 역할만 하기에 완전절을 이끔

  명사절 you claim [that you can see]. 명사절 내용을 주장하다

  주격관대절 Don't claim [something //that is not yours]. 관대절로 설명/제한된 선행사/어떤것을 주장하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If you were blind, you would not be guilty of sin; 
but now that you claim () you can see, your guilt remains.

 

* 보어인 형용사구 guilty of sin 형+부역전구

* now that ; As it is now the case that; seeing as; considering. ~을 보면/고려하면, ~한 경우이므로

"Now that" describes a situation that is true and allows for the possibility of something else to happen.

It's often used to describe a cause and effect relationship. 인과나 결과 관계를 설명하는데 쓰이는 숙어임

 

* 완전자동사로 쓰인 remains.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If you were blind, you would not be guilty. 
But now that you claim to see, you will keep on being guilty.

 

* to keep on ; to continue or persist in (doing something):

  to keep on 을 타동사구로 하면 being guilty는 동명사구가 되고

  상태유지의 불완전자동사로 하면 being guilty는 형용사 역할인 분사구로 이해되나

  한글 해석은 유죄인 상태 지속/계속하다로, 여전히 유죄다로 된다

The Message
If you were really blind, you would be blameless, 
but since you claim [to see everything so well], you’re accountable for every fault and failure.

 

* SINCE 는 부사adverb, 접속사conjunction, 전치사preposition 등으로 쓰이나 접속사면 종속절이 뒤따름

  starting at point in past and continuing; used for explaining why situation exists.

  본래 의미는 과거의 한 싯점에서 시작하여 현재도 진행중이라는 것이나 이유설명으로도 쓰임

* 목적인 부정사구 to see [everything] /so well 3형식 구조

* 형용사구 accountable for every fault and failure 실수나 실패에 관련한 책임이 있는 상태

* 숙어 To be accountable means to be responsible.

 

법 깬거 본다/안다하면 당연히 유죄지만 못 본다/모른다 하면 무죄라는 말이 법정에서 통할리는 없는건

혹시 모르고 했다 해도 여전히 유죄로 판결될 것이 定常정상이나 情想정상은 참작되긴 하지만

희생보다는 자비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르고한 일은 알게는 하시나 무죄처리 해 주신다 보이는데

사실이지 우리가 모르고 법죄하는 일이 수도없이 많지만 모르기에 회개도 할 수 없기에 정상참작이 되나

알고도 범죄하는 건 disobedience 거역에 지난 challenge 도발이기에 봐줄 건덕지는 커녕 엄벌만 받는다

 

장님의 경우는 볼 수 없기에 fault and failure 실수나 실패를 하고 또하고 더 하면서도 모르니 다시하나

안장님의 경우 혹시 못 보아 한두번 실수/실패/범죄는 했다쳐도 알고도 또 한다면 고질악질이 분명하고

이전에 모르고 범한 죄까지 합산하여 구형형량이 많아질게 normal 정상이다 하겠는데

알고도 육신이 연약하여 범죄한 경우 feel guilty 죄책감은 느끼겠지만 반복 범죄한다면 알고도 하는거라

알고도 태연히 하는 rebellious 도발적 범죄와 다를바 없다 보이나 회개의 가능성의 차이는 있다 본다

 

바리새인들의 경우는 율법을 달달달 외우고 남을 가르치는 율사이기에 법으로 치면 법관 수준이므로

자기들 입으로 나는 법을 잘 안다 하면서 법을 깨면 그들이야말로 정의와 자비 중 정의구현 대상이기에

안다/본다 하니 guilty still 여전히 유죄요 judgment/condemnation 심판/저주의 대상인 것이다

 

비-바리새인이나 이방인은 율법을 잘 모르기에 율법을 깨고도 깬 줄도 모르기에 무죄하다 하겠지만

사실은 법은 마음 심비에 새겨진 양심으로 인간이면 누구나 소유하기에 양심을 거스린 죄도 죄라

자기가 자기의 양심을 거스리고도 모른다고 시치미 뗀다면 이는 가식/위선에 위증죄까지 범하니

율법이 있었든 없었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범법자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게 확실하다

 

결국 모든 사람이 범죄한건 한 사람이라도 good conscience 양심따라 바르게 살지 못했다는 말이고

혹시 양심따라 살았다 하더라도  양심이 다만 자기선의 기준이라면 상대적 가치니 절대치에는 미달이라

fallen short 미달자 축에 끼지만 본인은 모르는 것이기에 혹시 장님이 받을 자비를 받지 않을까 하는데

장님이 일단 눈을 떠서 자기생각과는 전혀 딴판으로 다른 사실/현실에 직면하여 받은 충격으로

자신의 생각이 완전 틀렸음을 aware/admit 인식/인정하여 자신을 깬다면 눈 뜬 축복이 축복이겠으나

 

안 장님은 자기가 보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더이상 못 보는 장님노릇 하기는 매한가지이나

자신이 보지 못하던 사각지대의 사실/현실을 전달받고도 자기 옹고집 견해를 고수하면 여전히 장님이라

세상에 어떤 진리/사실/현실도 깨지 못할 장님노릇이기에 죄를 사유받을 회개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니

장님이나 안장님이다 가 같은 죄인이지만 진리를 대면하고도 깨지지 않는 안-장님은 회개하거나

용서를 구하지도 안 할 것이라 여전히 죄인으로 남는다 본다

 

* Conscience, pronounced "KAHN-shuhns," is a moral understanding, an inner feeling, of right and wrong.

* Conscience vs. Consciousness. 양심 대 인식

Your conscience is the part of your personality that helps you determine between right and wrong.

Your consciousness refers to your conscious experiences,

your individual awareness of your own internal thoughts, feelings, memories, and sensations.

 

로마서에는 율법이 있는자나 없는자나 다 같이 망할것이라 했는데 (롬3:8)

율법 있는자는 알고도 깨니 유죄요 없는자는 모르고 깨도 여전히 깨는 것임을 양심은 증거하니 유죄요

죄없다 하는 자가 먼저 죄인을 돌로 쳐라 하실 때 한 사람도 치지 못하고 물러선건 양심의 가책 때문이니

일단은 정의구현의 열정에 사무쳐서 돌로 쳐라 구호는 외쳤지만 곰곰 생각하니  내 죄도 만만찮게 많아서

감히 손에 든 돌로 남을 칠 위선? 용기? 뱃장? 양심?이 부재하므로 슬며시 돌 버리고 돌아선 사실을 보면

정의에 사로잡혀 정의구현을 외칠때는 자신을 보지 못하던 장님이다가 진리의 말씀으로 눈이 확 뜨여

정의구현의 대상은 바로 자기자신이었다는 현실/사실을 인식/인정하고 회개하여 돌아서면 면죄/무죄로 되지만

그런 말씀을 듣고도 우기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도 돌을 던져도 boomerang처럼 자기가 맞을 것이니 (마7:1)

본다/안다하는 것이 실은 보고 알지 못하게 막아 안장님을 장님 만들어 유죄로 남게하는 반전이 있다 하겠다

 

본다 안다 하는 것이 실제로는 눈 뜬자를 장님으로 만들어 볼걸 보지 못하게 하여 장님처럼 실족하기에

그런 장님들의 눈을 뜨게 하시는 메시야를 눈 앞에 보면서도 메시야의 존재를 인정 안하든 못하든 거부하면

남을건 희생양을 드리지 못해서 사유받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라 여전히 유죄요 심판대상인건

그리스도의 심판은 어차피 죄인을 구하기 위해 오신 희생양이시기에 (요12:47)

죄심판이기보다는 믿음/불신의 심판으로 믿는자는 심판을 면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나 (요5:24)

불신자는 불신으로 자신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므로 (요3:18) 본다하는 맹인노름으로 유죄를 고수하니

구원주를 보기는 보는데도 구원주로 모시질 않으니 보긴 봐도 못보는 맹인노릇을 바리새인/불신자가 한다

 

Lord, open our eyes to see You the Savior sent from God the Father.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