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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3:19 저주 같은 축복 Blessing in disguise of cursing

truth 2023. 5. 5. 00:25

Genesis 3:19 저주 같은 축복 Blessing in disguise of cursing


New Living Translation
By the sweat of your brow will you have food to eat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from which you were made.
For you were made from dust, and to dust you will return.”

 

* 강조상의 도치문 will you have food to eat, 일반문 you will have food to eat

* 전치사+관계사; which 는 전목을 대신하는 대명사로 문법상 전치사를 대동함

  //from which you were made = which you were made from (which)


New International Version
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since from it you were taken;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

 

* 강조상 문두에 쓰인 전치사구 By the sweat of your brow,  from it

  부사수식 전치사구는 문미에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강조산 문두에도 쓰임

  you will eat your food /by the sweat of your brow.

 

한자성경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食物)을 먹고 필경(畢竟)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取)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Message
    you’ll get your food /the hard way,
Planting and tilling and harvesting,
    sweating in the fields from dawn to dusk,
Until you return /to that ground /yourself, dead and buried;
    you started out as dirt, you’ll end up dirt.”

 

* 부사역할 명사구 /the hard way 힘든 방법으로/어려운 방법으로
* 형역 분사구; 분사의 주체/동작자는 주어이므로 주어수식이고 의미상은 동시동작상태

Planting and tilling and harvesting, sweating in the fields from dawn to dusk,

동시동작이므로 as 절/부사절로 전환 가능하나 정형동사로 써야 함

as you Plant and till and harvest, sweat in the fields from dawn to dusk,

파종하고 경작하고 추수하고 땀 흘리며

* 강조로 쓰인 재귀대명사 /yourself

* 삽입구인 형용사구 (being) dead and buried; 의미추가 역할; 죽어 파묻힌 상태

* end up phrasal verb 구동사/자동사구; ~에 봉착하다
to be in a particular situation, state, or place after a series of events, 

especially when you did not plan it

자동사구이므로 end up + 전치사구 또는 분사구가 뒤에 쓰일 수 있으나

* end up dirt ; as의 생략으로 볼 수도 있고

불자의 형태로도 할 수 있음 = end up (being) dirt

 

 

땀 흘려 먹고살다가 죽는다는 게 비참한 일이라 저주가 분명하고

선악과를 먹은 죄로 처벌을 받는 것이니 당연히 저주라 아니랄 수 없고

그것이 저주를 가장한 축복이라 하면 얼토당토 아니한 word play 말장난 같지만

저주라 하더라도 거기서 축복을 억지로라도 짜낼 수 있다면 대박이지 않을까?

 

없는 축복을 억지로 짜 낸다 해서 그것이 축복이 될 리 없지 않나? 하겠지만

무신 진화론자들도 말만으로  無무에서 유를 짜내어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진화로 생성하는데

유신 창조론분들이 말씀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창조능력을 belittle 축소 내지는 dismiss 무시한다는 생각도 문득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조의 산물인 creature 피조물이 nothing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으나

있지만 unseen 안 보여 없다고 생각하는 없을 '무'에서는 유를 창조해 낼 수 있고

그런 착각적/오해적/단정적인 '무'에서 유는 반드시 창조해야 창조론이 설득력 있게 된다

 

한자 無는 중국에서는 無의 간체자로 无자가 쓰인다 하고

숨을 乚 은이 낀걸 보아 숨었기에 없다는 의미 같고

(뚜껑 아래 숨으면 사망/망할 亡이다)

누군가는 사람(𠆢)을 장작(卌) 위에 놓고 불(灬)을 지르면? 타서 없지 하나

있었다가 없어진다는 의미로 보아 有 -> 無이니 빅뱅의 무->유와는 다르고

백뱅론조차도 백뱅을 initiate/cause 초래할 누군가/뭔가가 있어야 성립하므로

(과학물리법도 한 물체의 운동 상태는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한다)

한자나 과학자나 다들 이미 존재한 존재자/자존자를 point 지칭함이라

이미 있지만 보이지 않아 없다 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다

 

해서 이미 저주로 assume 단정되어 축복이 무인도인 저주도에서 살길을 찾자 하여

얼토당토 어불성설 천만부당 하게스리 저주로 가장된 축복을 재창조/음미해 보자 하는데

사실 저주로 가장된 축복이 사자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에서 일순 언급되기도 했고

cursing in disguise 축복으로 가장된 저주도 우리 주변에 널린 사례가 수다한 중

찢어지게 가난해서 못 먹어 비쩍 마르다 잘 먹고 OBCD 비만해져 잡병에 시달리는건

축복으로 가장된 저주를 여실히 증명하니 그 반전도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하겠다

 

가난해서 강도하다 십자가 처형받으면  가난이 저주가 분명 하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바로 옆에서 구원사역하시는 구원주를 인식/영접하여

저주받은 땅에서의 이생하직이 축복받을 that life 저 생 입장이 된 강도의 경우가

바로 저주 한복판에 숨겨진 생명과수를 믿음으로 보이도록 한 무유창조다

(무유창조 ; 안 보여 무였던 무에서 보이는 유로 창조하기)

 

가난해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여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죄질 틈이 없기에

부자라 놀고먹고 시간 많아 죄짓다가 이생망 사람처럼 되지 않았다면 (이생망 ; 이생에서 망할)

그 가난이 결코 저주만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되고

가난하기에 더 하나님을 rely on 의지할 unseen 보이지 않는 요인이 드러나

하나님 의지는 곧 축복으로 연결되므로 가난은 저주로 가장된 축복이 된다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같은 논리로 아담이 피땀 흘리며 노력고생하여 먹고살면서

단지 에덴동네의 잘살던 과거만 회상하면 저주만 seen 보이겠지만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나온 저주를 a desert deserved 달게 먹으며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안 믿어도 여전히 진리였다는 사실 확인에 더하여

사탄의 말은 철석찰떡같이 믿어도 여전히 비진리/거짓이다는 깨달음과

(learning by living 산경험으로 배운 건 지식만의 배움과 천지차이로 다르다)

저주예언 뒤에 주어진 구원예언을 저주로 닫힌 동산 한가운데 생명과로 확실히 보매

이런 안 보일 무에서의 보일 유-창조가 고난을 이길 힘과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유-창조 U-creation? 이건 본인의 유일무이 창작물이다)

 

물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란 사망선고에서 살 길을 찾기란 좀 버겁지만

그 역시도 저주 가운데서 오래오래 살라는 말을 eternal curse 영원저주로 보면

사망선고는 저주 가운데서 건져질 축복의 말씀이 확실한 건

연세가 팔구십되면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축복이 오히려 저주인 것을

늙고 병들어 쓸모없이 병상에 누워보지 않아도 얼추 짐작 가는 일인데

사망의 문 뒤에 축복이 있다는 하나님의 현실을 보지 못하면

고생고생 또 고생하면서도 고생스러운 삶에 목을 매는 처첨한 삶만 계속될 것이나

평균 900년 장수를 누리던 1500 BF 홍수전 사람의 고백은 사망의 동경이었다

(BF : before the flood 본인 창조)

 

창 5:29

Lamech named his son Noah, for he said,

May he bring us relief from our work and the painful labor of farming this ground that the Lord has cursed.

 

물론 노아의 이름에 홍수심판이 involved 결부된 건 사실이지만

고통스러운 농사노역을 수백 년 하다 보면 누구라도 relief 놓여 나기를 소원할 거라

사망심판이 저주일 수도 있지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반전이 안 보이나 있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저주를 위한 저주가 아닌 축복을 위한 저주로 보아야

창세기 저주에서부터 계시록의 저주가 다 축복을 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계시록의 plague 역병 저주 같은 코로나 저주가 임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산 사람은 두려움과 온갖 삶의 비참함을 다 겪으니 저주가 분명 하나

이 저주로 인해서 죄업만 쌓던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의 대열에 끼면

이것이 저주를 가장한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만 단지 가정만은 아니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 부인할 수 없는 무-유 창조요

보이지 않는걸 믿음으로 보아 확신하는바 믿음의 창조라고도 하겠다

 

Do you see blessing in the midst of cursing?

저주 가운데 축복이 있다고 보는가 믿는가?

(아담이든 in my case 내 형편이든)

없는 걸 있다 믿으면 deceptive faith 믿음사기이지만

안 보여 없다 하는 걸 보는 건 true/real faith 진짜 믿음이고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바로 이 믿음이라

믿음이 곧 reality 實相실상이요 proof 證據증거가 되는 것이다

 

Lord, help us see what's unseen, You and Your blessing works.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