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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23:11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사칭하는 자기감정

truth 2023. 1. 26. 08:42

Acts 23:11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사칭하는 자기감정

(행 21:12-14)에 기록된 사건의 발단을 보면

마치 성령님께서 하신 예언이 바울의 로마행을 반대하는 것처럼 해석되어서 신자들이 울며 간곡히 말리나

그전에 바울 본인에게 하신 성령님의 감화감동과 충돌/상충/반대하는 인상을 주기에 헛갈리는데

바울이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불순종하는 듯 보이나 실은 신자들이 인간의 정/감정에 의한 감화감동으로

성령님의 예언을 해석했다는 것이 행 23:11절 말씀으로 증명된다

 

사건의 발단


12 When we heard this, we and the local believers all begged Paul not to go on to Jerusalem. (이하 NLT)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애걸하니
13 But he said, “Why all this weeping? You are breaking my heart!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이하 개역개정)


13 I am ready not only to be jailed at Jerusalem but even to die for the sake of the Lord Jesus.”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When it was clear that we couldn’t persuade him,
we gave up and said, “The Lord’s will be done.”
그가 권함/설득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포기했다

주님의 뜻


Acts 23:11 
That night the Lord appeared /to Paul and said, “Be encouraged, Paul.
 Just as you have been a witness /to me /here in Jerusalem,
 you must preach [the Good News] /in Rome /as well.”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3:11에서 예수님께서 로마를 언급하심으로 바울의 로마행이 예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이 마침내 드러났으므로
21:12에서 예언을 한 선지자나 들은 신자들이 한 가지로 바울을 못 가게 말린 것은 사람들의 情정에 의거한 동정이지
하나님의 뜻이 계시된 예언에 의거한 동조는 아니었기에 일종의 성령님의 사역을 훼방한? 人情인정으로 확인되는데

감정을 가진 인간이면 누구나 성령님 사칭을 하는 감정에 휘말리고 사로잡혀 감정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적이지만
일반인 신도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영역의 믿음을 가진 바울을 비록 좋은 감정/정으로 울며 말려도 말릴 수 없었기에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걸로 마무리진 사연을 통해 우리의 감정이 성령님을 사칭할 가능성이 많은 걸 알아야
내가 내 감정을 성령님의 감화감동으로 착각해서 자기감정에 충실/충직/충신하다가 감정폭발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The problem is ...문제는 내 감정과 성령님의 감화감동에는 감정이라는 common ground 공통분모가 존재하며

두 감정의 영역 사이에는 맺고 끊는 명백한 선/경계가 모호하기에 It's hard to draw the line between them.

여차하면 자기감정을 성령님의 감화감동으로 착각하여 성령님을 사칭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본래 신노름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성령사칭을 진짜처럼 진실신실하게 감격적으로 연기도 한다

 

자기의 신노름을 좀 안다 하는 신자들은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자기감정으로 속단하여 성령님을 무시 내지 거부도 하므로

결국 성령님의 사역을 훼방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성령님의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평생 빈약한 헛바지 신자가 되기도 하는데

 

이런 사단파탄의 배경에는 my view point 내 시각/견해/관점/기분/경험/지식/편견 등등의 "log eye 대들보 눈"이 존재하기에

제아무리 대들보로 꽉 막히고 비뚤어진 사시안 눈으로 정확하게 사태를 판단한다해도 나올 건 정확으로 포장된 비정확이라

그걸 기준으로 제아무리 신실하게 죽도록 노력하고 충성하여도 결국 들을 말은 " I don't know you. 나는 너를 모는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청천벽력의 선언을 초래하는 원인/발단이 되는 것이기에

먼저 대들보 눈의 배경/실체인 my view point 내 시각을 제거해야 비로소 작은 티끌이라도 분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후 5:16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제거 대상이 분명하다 하겠지만

 

So we have stopped evaluating others from a human point of view. 인간의 시각

At one time we thought of Christ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How differently we know him now! (NLT)

 

내가 내 시각인 내 눈을 스스로 어찌 뽑을까 하는 문제가 대두되나

죄성으로 오염된 내/니/그 시각 말고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시각이 존재할 거라는 상상을 조금 해 보면 해결문이 열려서

존재하시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시각을 보이는 문자로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 시각이라는 걸 알게 되어

그 말씀을 내 시각으로 대체하면 되겠지만 역시나 내 주관해석으로 오염될 소지가 많기에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내 눈과 귀와 마음을 대신하여 성령님의 모든 것으로 만사를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해야는데

바울의 천지개벽 간증에 쉬운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I asked, ‘What should I do, Lord?’(행 22: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행 22:10) 

 

사울 때에는 신약에 계시된 말씀이 없고 그림자인 구약만 있었으므로 어찌할 바를 몰랐었기에 한 질문이겠지만

우린 기본적으로 어찌할 바를 이미 잘 알고 있기에 해야 할 그것을 알자 하여 성경을 읽는 것이고

읽고 행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따르며 어찌할 바를 묻는 습관을 기른다면

내 감정인지 성령님의 감화감동인지 구별할 수 있는 역량도 생길 것이 확실하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