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16:15-16 (NIV) 나는 그리 믿었을 수 있었을까?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Messiah, the Son of the living God.”
* what about ; 의견을 묻는 관용구; 어찌 생각하는가?
—used to ask someone to tell one something in response to the thing that one has just said
* 복합문의 의문문; Who do you say I am?
복합문 ; you say that I am who.
* Messiah comes from the Hebrew word, Mashiach, meaning “the anointed one,” or “the chosen one.”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나
그리스도의 사역을 원거리 관찰을 한 누구나 선지자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감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보이고
만약 우리들의 시대에 인간의 몸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쳐도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시라고 믿기란 어려웠을 것이라 사료되는 건
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그들 자신들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발자취를 찍으시고
메시야 예언도 기록되어 읽을 수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조차도
감히 성자 하나님의 현현으로 까지 가지는 못 했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 역사책에는 구원주가 오실 거라 예언된 글 한 줄도 없었고
우리 역사에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셔서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기신 것도 아니기에
(간접적으로는 얼마든지 그분의 발자취를 관찰할 수 있지만)
그냥 남들과는 좀 다른 특별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 하는 게 일반적이라 본다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say Elijah; and still others, Jeremiah or one of the prophets.”
베드로 역시도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 없었을 것이라 판단되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려 주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고 말씀하셨기에
베드로의 엄청난 고백을 십분 이해할 수가 있고
그리스도께서 바다 위를 걸으시거나 기적을 행하실 때는
그리스도를 얼마든지 쉽게 내 구원주로 고백하고 의지할 수 있지만
십자가에서 죽어가든 강도의 '날 기억하소소' 한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 보다도 수천만 배 엄청난 믿음의 고백으로 보이고
감히 그럴 상황이었나 생각해 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고백으로 생각드는 게
자신도 고통 속에서 죽어가니 보통 괴롭고 혼란하고 처절한 상황이 아닌 데다가
옆에서 같이 죽어가는 피범벅인 메시야를 보며
자신을 살릴 수 있다 믿는다는 건
보통 사람이 보기에 정신 나가도 보통 나간 게 아니다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만약 내 자신이 그런 상황에서 같은 상황에 처한 메시야를 보며
날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고 고백할 수 없었을 것이라 단언되는 건
내 죄로 벌 받아 죽어가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멀쩡한 사람들도 명패상 만의 왕인 메시야를 조롱야유하고
정치나 종교계 지도자들도 한결같이 그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정의구현이라 하니
나 같은 일개 평민이 그것도 자신의 범죄로 죽어가는 마당에
대중들로부터 버림받고 놀림받고 고문당하다 처형당하는 메시야를
날 구원할 구세주로 믿기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증명되었고
메시야의 자초지종 사연을 다 알고 있으므로
그 강도처럼 자신 있게 날 구하소서 하고 고백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 장담이 시험대에 올라 십자가 처형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핍박과 압력과 고민고초와 조소와 의심과 회의도 가해진다면
여전히 피범벅 된 상태로 피범벅된 메시야께 구원을 보장받자 할까?
내 형편을 잘 아는 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답이다 하는 게 내 현실에 맞겠지만
내 현실과는 달리 존재하는 God-reality 하나님의 현실에서 조명해 본다면
비록 피범벅이 되어 한심하게 죽어가는 메시야 그분이 누구인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고 구원주로 오셨으니
죄인들을 구워하시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라
이 강도는 구원주의 구원사역의 중차대한 한 장면을 근접 목격함과 동시에
그날 그 시로 구원도 경험한 최고의 행운아였는데
그런 피비닌 내 나는 처참한 상황 아래서도 죄인 하나 구원하시기 일 없으시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우리 죄인에게 구원의 믿음과 소망의 은혜를 흠뻑 주실 수 있으실 거라
그 강도도 그런 이유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가능한 고백을 할 수 있었지 않을까 한다
Jesus looked at them and said,
"With ma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마 19:26)
위 구절을 말씀하신 분이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고
강도 옆에서 죽어가는 메시야도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었으니
강도 혼자 스스로는 어쩔 수 없었던 극한 상황이었지만
강도에게 깨알 같은 믿음도 주셔서 그 엄청남 고백도 할 수 있게 만드셨다 확신한다
Lord, help us realize that You are the very one who does what we think is impossibl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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