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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9:39 장님 만들기와 장님인 걸 알게하기

truth 2022. 10. 9. 22:43

John 9:39 장님 만들기와 장님인 걸 알게 하기

 

New International Version

Jesus said, “For judgment I have come into this world,

so that the blind will see and [those //who see] will become blind.”

 

* 의도 설명의 부사절 접속사 so that

* 종절의 주어인 명사구 those //who see 대명사+형절/주격 관대절

* 주격 관대절 //who see 관계사=선행사=주어

 

 

개역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New Living Translation

Then Jesus told him, “I entered this world /to render judgment

—to give sight to the blind

and to show [those //who think () they see] [that they are blind].”

 

* 부역 전구 /to render judgment

—to give sight to the blind

to show [those //who think (that) they see] [that they are blind].”

* 종절의 ahrwjr인 명사구 those //who think (that) they see 대명사+형절/주격 관대절

* 주격 관대절 //who think (that) they see 관계사=선행사=주어

* think의 목적인 명사절 (that) they see

* 직목인 명사절 that they are blind

* 주의 ; to show those //who think that they see that they are blind.” 에서

[those //who think that they see that they are blind] 전체를 목적인 명사구로 착각할 수 있는 건

//who think~형절, think의 목적은 that they see~ , see 목적은 that they are blind로 볼 수 있기에

구조적으로는 대명사+who절/형절+that절/명사절+that/명사절=명사구로 목적은 될 수 있지만

의미적으로는 '그들에게' 보여주다로 미완의 문장이라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지 직목이 필요하기에

마지막 that절은 see의 목적절이 아니라 show의 직목인 명사절로 되어야 한다

 

문법적으로만 맞아도 안 되고 의미적으로도 맞아야 하기에 전후관계를 따져서 통하는 의미를 찾듯

성경도 문맥상 통하는 의미로 번역을 해야는 것이 상식이다 하겠는데

NIV나 개역 개정의 한 구절만 두고 보면 예수님께서 마치 안 장님을 장님으로 만드시려 오셨다 오해되나

 

앞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장님이 확실히 눈 뜬 사연이 있기에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가 맞고

장님이 처음에는 구원주를 구원주로 못 보았지만

육체의 눈을 뜬 것처럼 영적인 눈도 떠서 구원주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으니 보게 하신 것이 맞는데

 

바리새인의 경우는 눈앞에 구원주가 서 있는데도 못 보았으니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장님이 확실하기에

더 이상 장님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되므로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신 말씀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사료되나

 

바리새인들은 다 못 보는데도 다 본다는 강철 같은 확신에 사로잡혀서 봐야 할 것을 못 보기에

자기네들도 기다리고 고대하던 구원주를 눈앞에 두고도 못 보고 오히려 오신 구원주를 거부하여

자신들의 불신으로 구원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니 보는 자가 맹인으로 된 것은 확실하다

혹시 보긴 보나 다 못 본다고 겸손히 고백했더라면 영원한 장님 신세는 면했을 걸...

 

사실 안 장님이 보긴 보나 다 보는 것도 아니고 시력의 한계 밖은 여전히 못 보는 것이 현실이고

바울 조차도 우리가 보긴 보나 청동 거울로 보듯 희미하게 본다고 증거 하였고 (고전 13:12)

현대의 우리도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쌩' 눈이 보는 한계를 훨씬 지나쳐 보기도 하지만

양수나 음수에 드러나 있는 영원을 보기엔 여전히 허접한 한계적 수치로 보는 것이 사실이고

 

어떤 때는 얼굴에 끼고 있는 안경도 등잔 밑이 어둡듯 못 보아서 찾고 또 찾기도 하고

어떤 때는 코 앞에 있어도 못 보고 충돌하여 코피 나거나 날벼락을 경험하는 것이 일상사이기에

본다 하니 못 보는 장님으로 낙인찍혀 사망의 순간까지도 참 현실을 못 보고 (골 2:17)

장님 아닌 장님으로 코끼리 다리 만지며 세상은 동서남북 4기둥이 전부라고 믿고 살다가

육적인 눈도 감겨 맹인 되는 죽음이라는 날벼락 천지개벽의 순간조차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아서

영원한 천국을 못 보고 그 반대 방향을 선택하여 가는 저주스러운 영적인 맹인으로 되는바

본다고 하는 자들이 영적으로 맹인 된 것이 확실하나

 

39절을 여차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그리 만드셨다 오해할 여지가 많기에 앞절을 잘 살펴보면

내가 너희들에게 진리를 말해주마 하시며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누누이 설명하셨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신 기적으로 증명도 하셨건만 작심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기를 거부하니

의심은 의심을 더하고 불신은 불신을 더해서 보긴 보아도 못 보는 장님이 된 것이 사실이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맹인으로 만드셨다고 오해할 여지는 한치도 없으므로

아마도 번역가들이 글자 직역에 얽매이다 보니 그런 오해 소지를 유발했다 보이나

NLT의 번역을 보면 그런 오해가 싹 가신다

 

물론 부정사구에 형절 하나와 명사절 두 개를 써서 우리 실력으로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고딩까지 열심히 배워온 영문법 실력을 총동원하여 곰곰 따져보면 이해 못 할 리도 없는 문장인데

이해하고 나면 오해로 배탈 난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명품 표현이 아닐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부정사구 to show [those //who think that they see] [that they are blind]는 4 형식 구조이기에

[본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그들이 장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로 이해되고

본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이 눈앞에 서 계시는 구원주를 못 본 장님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시니

이 경고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본다 하며 못 보는 장님이 되지 않아야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신 저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하겠는데

죄 가운데서 죽을 인생이 구원주를 못 보는 것보다 더한 저주가 또 어디 있으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코 앞에 있는 구명정을 못 보는 것이 비극인 것처럼

성경을 읽으면서 바리새인들의 가식에 분개하면서도 자신이 바로 그 바리새인일 수도 있는 현실을 못 보면

그들처럼 코 앞에 서 계시는 구원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못 보아 망하는 비극을 자초할 수 있기에

스스로 스스로를 불신 장님으로 만들게 마시고 장님인 걸 인식하여 눈 뜨기를 소원하여

 

바디매오처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 (마가복음 10:48)

확실히 눈 뜰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 말씀이 증명한다

 

Lord, help us realize that we were in fact born blind and receive the spiritual sight.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