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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건국했으면 독립운동 왜 했나

truth 2024. 8. 24. 11:17

 

1919년 건국했으면 독립운동 왜 했나

출처

https://m.cafe.daum.net/wccr/2HJ2/6365?#none

 

"이 회장과 나는 집안의 연고가 굉장히 깊다. 우리 외조부가 이 회장 조부의 형제분들과 아주 절친한 사이셨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분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이 회장에게 묻고 싶다. 이 회장은 나와 같은 해인 1936년에 태어나셨다. 당시 출생 신고를 하셨는가. 어느 나라 국민으로서 호적을 받게 되셨는가. 우리는 당시 일제의 호적을 받았다. 그때 우리가 한 나라의 '국민'(國民)이었다면,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다면 왜 일제 하에서 우리가 식민지로 신음하고 독립운동을 했어야 했는가.

 

"사실 '일제강점기'도 종북 좌파 세력이 만들어낸 말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시대를 '미제 강점기',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에는 '일제 식민지배, '일제', '일제 시대'라고 불렀지, 일제강점기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우리를 점령함으로써 식민지로 삼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배를 사실로 인정하고 우리가 일제로부터 받았던 설움과 압박을 딛고 이렇게 훌륭한 국가로 성장했다고 나와야지, 일제 식민지배는 무효이며 우리는 독립국가였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일제가 군대로 강점한 게 아니고 매국노들이 대한제국을 통째로 일제에게 바친 것이다)

 

"소위 '기득권'이라고 자신들이 규정하는 세력을 퇴치하고 나라를 뒤엎기 위해 친일을 내세우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에서 산다는 것을 아주 극단적으로 본다면 당시 나 같은 어린애도 친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 가면 '황제폐하 만세'를 부르고 창씨개명을 해야 했는데 국민 전체가 친일파였다는 것인가. 유명한 사람일수록 일제에 협력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는데 그런 사람들 모두를 천편일률적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북한은 친일파를 완전히 청산했기 때문에 민족의 독자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난센스'다. 공산주의는 당시 '세계 공산당'으로 결속된 조직이었다. 마르크스가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한 이후 한 국가에 공산당이 하나씩 생겼고 그 공산당들이 합쳐져 세계의 공산주의 구조를 만들었다. 당시 국가로서 권력을 가진 건 소련이 유일했으므로 소련의 공산당이 전 세계의 공산당 조직을 지휘했다. 당시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브다'나 정부 기관지 '이스베스챠'에는 예를 들어 '당신(김일성)의 나라가 독립한 것을 선포한다'는 등 공식 문건을 싣고 김일성에게는 중앙당 서기장 스탈린의 이름으로 비밀리에 지령을 내리는 이중구조가 있었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는 북한이 민족의 독자성을 가졌다는 것인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한 사람은 그 사람 하나가 아니었다. '저쪽'(종북 좌파 세력)의 지령에 따른, 대한민국을 허물기 위한 동시다발적인 작전이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것은 지식 부족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물기 위해 고의로, 거짓말로 유치원생, 초등학생 등 어린이까지 세뇌하고 있다. 내 막내 조카손녀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한두 달 초등학교에 다니더니 '이승만은 몹씨 나쁜 사람이다. 국민을 많이 죽였다'라는 얘기를 했다. 조카손녀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인 제가 너무 놀라서 아니라고 했는데도 믿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물기 위한 종북 좌파 세력의 작전은 현재진행형이다."

 

'1919년 건국설'은 왜 문제인가.

 

"'1919년 건국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이었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몇몇 사람의 발언으로 달라지는가.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 아니다. 국가가 수립된다는 건 국제적인 공인이 필요하며 국가가 국가로서의 권능을 가져야 가능하다.

 

이승만 박사나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를 우리의 망명 임시정부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어느 나라도, 심지어는 임시정부에 우호적이었던 중국의 장개석 정부조차도 인정을 거부했다. 국내에서 일제의 압박을 받고 살던 한국 백성의 절대다수는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계승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계승했다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5·10 선거를 통해서 만든 나라다. 제헌헌법 전문이 제일 잘 만들어졌었다. 그걸 바꾸지 말아야 했다. 나는 헌법 전문을 바꾼 게 잘못이라고 본다."

1948년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는가.

 

"광복이라는 말은 애국투쟁, 항일운동가들이 많이 썼고 우리 국민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광복은 우리가 주권을 회복하고 자주독립을 이룬다는 의미다. 1945년 8월 15일까지 우리는 일본이 물러가면 우리가 독립국가가 되는 줄 알았다. 진정한 광복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해방으로 끝났기 때문에 우리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건국절을 따로 제정할 필요는 없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사실 건국과 광복은 모두 대한민국의 탄생을 의미한다. 익숙한 광복절이라는 말을 바꾸자고 하면 국민들의 저항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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